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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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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신아시리아 제국 사르곤 왕조의 초대 왕.
2. 생애[편집]
아시리아 왕실 계보상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진짜 티글라트의 아들인지 불분명한데다 적자도 아니었다. 때문에 전임자인 샬마네세르 5세에 이어 즉위한 것도 정상적인 승계가 아닌 쿠데타처럼 폭력을 동원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정통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았는지 여러 정책을 시도했고 이름도 메소포타미아 최고의 군주이자 아카드 제국의 건설자 사르곤의 이름을 따왔다.
이처럼 즉위에는 온갖 의문점이 있지만 재위 기간 동안 활약은 많았는데 아시리아를 위협해 오던 우라르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대도시인 무사시르까지 빼앗는 성과를 내면서 우라르투를 몰락시켰다. 또한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마르둑-아플라이디나 2세[2] 가 반란을 일으키자 몆 차례나 군을 동원해 진압하여 결국 아시리아의 승리로 마무리지었다.[3]
사르곤 2세는 기원전 717년부터 새로운 수도 조성을 준비하고 11년 뒤인 기원전 706년 수도를 님루드에서 두르샤루킨으로 옮겼으나 수도를 옮긴 지 1년 만에 아나톨리아 중부 지역에서 타발과의 전쟁 도중 전사하고 말았다. 심지어 시신마저도 회수할 수 없어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도 못했다. 사르곤 2세가 야심차게 조성했던 두르샤루킨은 아들 센나케립이 즉위한 후 아버지가 불운하게 죽은 것에 충격받고 사르곤 2세의 치적과 거리를 두며 니네베로 수도를 옮기면서 버려졌다.
[1] 기원전 760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2] 《성경》에서 나온 이름으로 메로다크-발라단이라고도 알려져 있다.[3] 다만 마르둑-아플라이디나 2세는 사르곤 2세 사후에도 반란을 더 일으켰고 사르곤 2세의 아들인 센나케립이 완전하게 진압하고 나서야 바빌론을 포기하고 반란을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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